전주 한옥마을 감성 여행기
어릴 적 수학여행으로 스쳐 지나갔던 전주. 그땐 분주한 걸음 속에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느림의 미학을 품고 다시 찾은 전주 한옥마을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천천히 걷기’. 걷고,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전주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고즈넉한 한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기와지붕과 나무문살, 돌담길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다가도, 어느 순간엔 그냥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풍경 속에 스며들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경기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공간인데, 오래된 고목과 한옥 건물의 조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아이들 웃음소리가 귓가에 퍼진다. 소음 없는 도시는 없겠지만, 전주의 소음은 왠지 부드럽고 정겹게 느껴졌다.
점심은 비빔밥 골목에서 해결했다. 한옥의 멋을 그대로 간직한 식당에 들어가 전주비빔밥을 주문했다. 돌솥에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채소, 계란, 고명이 어우러진 비주얼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한 숟갈 먹는 순간, 이 맛을 왜 전주의 상징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깊고 풍부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식사 후에는 한옥마을 골목 곳곳을 돌며 카페와 소품샵을 구경했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쌍화차를 시켜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그 풍경이 더 운치 있게 다가왔다.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우산을 쓴 사람들이 천천히 오가는 골목, 그리고 조용한 국악 선율. 어느새 마음이 푹 젖어들었다.
해질 무렵엔 전동성당 앞 벤치에 앉아 노을을 감상했다. 성당의 붉은 벽돌과 어우러지는 노을빛이 참 아름다웠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이 도시의 감성은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그 감성 속에서 나 역시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었다.
숙소는 한옥체험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로 예약했다. 다다미 방과 창호지 문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이불을 펴고 누웠다. 마루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여행지에서의 밤은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 짧은 시간을 더 깊이 음미하게 된다.
전주는 빠르지 않아서 좋았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고,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한옥의 미, 음식의 깊이, 사람들의 온기까지. 짧은 여행이었지만, 오래 기억될 감성 가득한 시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감정만큼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