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경주 황리단길 & 대릉원 산책기

gharhxn 2025. 7. 29. 06:05

 

천년의 고도, 경주는 언제 찾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도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느긋하게 걷는 것’이었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황리단길, 그리고 고요한 고분의 정취가 담긴 대릉원. 두 곳을 중심으로 하루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경주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황리단길. 경주의 옛 시가지였던 이곳은 최근 몇 년 사이 ‘감성 골목’으로 떠오르며 다양한 카페와 소품샵, 맛집들이 들어서면서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필수 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경주만의 고풍스러움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한옥을 개조한 카페들이 눈에 띄는데, 그중 하나에 들어가 따뜻한 말차라떼를 주문했다. 나무 창살 너머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햇살, 마루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잔잔한 음악. 도심의 바쁜 일상과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는 듯한 그 여유가 참 좋았다.

 

카페를 나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소소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수제도장 가게, 빈티지 우산가게, 한지공예 체험장까지. 그 중 ‘경주엽서’라는 작은 편집숍에서 구입한 고풍스러운 포스트카드는 지금도 내 책상 한 켠에 놓여 있다. 여행 중 만난 풍경 하나하나가 감성으로 다가오는 곳, 황리단길은 그런 곳이었다.

 

점심은 경주 명물 중 하나인 찰보리빵과 함께한 쌈밥 정식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릉원으로 향했다. 황리단길에서 도보 5분 거리. 입구를 지나자 고분들이 고요히 자리한 풍경이 펼쳐진다. 높이 솟은 둥근 흙무덤들과 잘 정비된 산책로, 푸르른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대릉원 내부에 있는 천마총은 실제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분 중 하나다. 내부에는 고대 신라 왕족의 유물과 무덤 구조가 재현되어 있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조용히 둘러보며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니, 단순한 관람이 아닌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대릉원 산책의 백미는 저녁 무렵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고분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긴 그림자가 산책로를 따라 드리운다. 이 순간만큼은 말없이 걷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땅 밑에 잠든 역사들의 침묵까지.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다시 황리단길로 돌아오는 길, 밤이 내려앉은 골목은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한옥들, 야외 테이블에서 웃음소리 가득한 여행자들, 그리고 조용히 가게 문을 닫는 상인의 모습까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풍경이었다.

경주는 단순한 역사 도시가 아니었다. 느림과 여유, 전통과 감성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황리단길과 대릉원은 그 중심에서 그 매력을 온전히 보여주었다. 다음엔 계절이 바뀐 경주를 다시 걸어보고 싶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고요한 눈이 내리는 겨울밤. 그 어떤 모습이든 경주는 늘 나를 반겨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