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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섬’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레는 여행지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남해는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씻어내기 딱 좋은 곳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독일마을과 다랭이마을. 이 두 마을은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남해의 자연과 어우러지며 각자의 매력을 뿜어낸다.
아침 일찍 남해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남해 독일마을. 1960~70년대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 후 정착해 만든 마을로, 알프스 풍의 건축물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이색적인 곳이다. 언덕 위에 올려진 붉은 지붕의 집들과 하얀 벽이 마치 유럽의 작은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마을을 걷다 보면 곳곳에 작은 박물관, 기념품 가게, 독일식 소시지를 파는 카페들이 있다. 독일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독일이주민 전시관도 인상적이다. 기계 소리와 먼지 속에서 고생한 이들의 삶, 그리고 낯선 땅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버텨낸 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전시관을 나와 언덕 위 전망대로 향했다. 탁 트인 남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멀리 보이는 해안선이 아름답다.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오후였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한국적인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풍경은 남해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조화다.
점심은 독일마을 근처에서 수제 소시지와 감자샐러드로 간단히 해결했다. 독일식 맥주도 함께 곁들이니 여행의 기분이 더 살았다. 이후 다시 차를 타고 다랭이마을로 이동했다. 독일마을의 이국적인 감성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의 전통적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배경으로 층층이 쌓인 계단식 논밭이 유명하다. ‘다랭이’는 계단식 농경지를 의미하며, 좁고 가파른 산비탈을 일구어 만든 이 논밭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절경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 산책로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바다와 하늘, 논밭이 어우러진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특히 석양 무렵, 논과 바다 사이로 해가 천천히 내려앉는 순간은 그 어떤 사진보다 아름답다. 마을 어귀엔 작은 카페도 하나 있어, 땀을 식히며 쉬어가기에도 좋다.
다랭이마을을 걷다 보면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벽돌로 쌓은 밭두렁, 마을 회관 앞에서 장기 두는 어르신들, 그리고 손수 키운 채소를 파는 작은 무인 판매대. 화려하진 않지만, 그 안엔 깊은 정과 시간이 담겨 있었다.
하루 동안 이국적인 독일마을과 토속적인 다랭이마을을 모두 둘러보며, 남해라는 지역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을 품고 있는지 새삼 느꼈다. 단순히 관광지를 보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자연,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여행이었다.
다음엔 남해의 다른 해안길도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고, 한적한 시골길에서 더 많은 여유를 느끼고 싶다. 남해는 그런 시간을 선물해주는 곳이었다.